2010년 8월 18일 수요일

게임개발자 북미취업 가이드 5편: 실제 취업사례 - 포프


사실 북미취업 가이드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제4편: 실전가이드'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냥 이론만 주루룩 늘어놓는 것보단 실제사례를 통해서 배우시는 분들이 꽤 되시므로 이번 주와 다음주를 통해 제 취업사례와 다른 분들의 취업사례를 늘어놓으려 합니다. (제 취업사례는 무지 주관적이고 다른 분들의 취업사례는 객관적이 될듯요.)

사실 한국에서 평생살꺼라고 생각했던 제가 이렇게 캐나다까지 건너와서 게임개발을 하게 된 사연(?)을 공개하는 것, 상당히 주저스러웠습니다. 제 삶에서 지난 20년 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한번에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처음인데 제 과거중에 상당히 부끄러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이젠 한국을 등지고 사는 제 모습을 곱지 않게 보실 분도 계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 이야기를 통해 제정신 차리시는 분들이 한분이라도 있길 바라며 제 숨겨진 이야기를 여기에 올립니다.

현재 포프의 상태 - 북미경력 6년차의 그래픽스 프로그래머
일단 현재 게임프로그래머서의 제 상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군요.
  • 현재 Relic Entertainment스페이스마린 팀에서 렌더링 프로그래머로 재직중입니다.
  • 북미 경력 6년, 한국경력 포함 대략 10년입니다.
  • 내년쯤에 Senior Graphics Programmer 타이틀을 달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Senior 바로 아래 직급)
  • 한달에 한 번씩은 세계 유수의 게임개발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습니다. (오늘도 Ubisoft에서 전화왔었습니다.)
현재 문화적으로는 솔직히 한국인이라고 하기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 영어가 주(primary) 언어입니다. 생각도 영어로 하고 꿈도 영어로 꾸는 상태가 되었죠. 북미가이드 쓸 내용을 일주일내내 전철타고 출근하면서 노트에 끄적이는데 그 끄적이는 것조차 영어로 합니다. 한국말은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하고 통화할 때 하는게 전부입니다. (한글 트위터 및 블로그 연 뒤로는 오히려 좀 더 자주합니다만 아직도 영어가 조금 더 편합니다. 영어로 먼저 생각한뒤 한글로 번역하는 수준이랄까요.)
  • 친구도 대부분 캐나다인고 한국친구는 1명밖에 없습니다. 저란 인간 알고보니 캐나다인들하고 문화적으로 더 잘 맞더군요. 캐나다인이 좀 더 사생활 존중도 잘해주고 실용적/논리적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 TV/영화/음악/뉴스 등의 한국 문화 및 소식과는 단절된지 오랩니다.

그럼 제가 어쩌다 이꼴이 되었을까요. 이 모든 스토리는 제가 처음 게임프로그래머 일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첫 게임개발 시도 - 그리고 실패
제가 게임을 만들 꿈을 꾸기 시작한건 중2 때부터 입니다. 1991년 쯤이죠. 이 당시 게임개발사들은 사실 매우 소규모였습니다. 한 4~5명이 모이면 게임 하나 만들던 때랄까요? 이 당시만해도 "전 컴퓨터 게임 만들거에요."라고 하면 무슨 소린지 이해못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절대 사회적으로 인정 못받는 직업이었지요.

어린 마음에 뭔가 큰 미래를 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여기에 본능적으로 끌린 것이었을까요? 전 이 때부터 몇몇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거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프로그래머 체질이었던 저는 게임개발을 하려면 터보C를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는 중3때 C를 독학으로 마칩니다. (매 교시 쉬는시간마다 10분씩 공부했죠.)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 너다섯 명과 게임개발을 시작합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동안 게임디자인/레벨 디자인하고 밤과 주말에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했었죠. 주경야독이랄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냥 친구들끼리 장난삼아 놀이삼아 게임개발을 했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듯 한데.. 그것보다는 조금더 진지했었습니다. 강남역에 사무실(오피스텔)까지 하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 여기에 퍼부은 시간도 왠만한 전문 게임개발자 못지 않았습니다.. 주경야독 맞죠? ^^

이렇게 큰 야망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게임을 내놓고 실패한것도 아니고, 1996년 모든 팀원들이 대학 진학한 지 얼마 안되서 내부불화로 팀이 해체 되었습니다. (사실 제 탓이 젤 컸죠. 팀장이고 리드 프로그래머이기까지 했는데 성격이 모나서 저하고 다른 핵심멤버하고 대판 싸우고 해체되었으니까요.)

법학도 - 방황의 시절
팀이 깨졌을 때, 전 이미 연세대 법학과에 재학중이었습니다. 왜 컴퓨터 과를 안갔냐고요? 가고 싶었습니다. 못갔죠. 제가 문과/이과를 선택해야했던 고2초 때까지만 해도 색약(색맹보다 조금 약한 놈. 하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무시받는 놈 ^^.. 그래서 제가 Blind Renderer죠. 색맹은 Colour Blind니까...)은 이과진학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게 가능해 졌을때는 이미 제가 고3이 된 이후였고, 그 때 다시 이과로 전향해서 모든 학업을 따라잡는게 너무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문과에 머물렀고 결국 법대에 가게 된거죠. 어차피 모든 걸 독학으로 배우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무슨 과를 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게임 만들어서 성공하면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덕분에 '법대출신 게임프로그래머'라는 멋드러진 타이틀을 달고 다닙니다. 이젠....)

근데 게임 팀이 해체되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죠. 다른 멤버들은 대부분 공대나 컴퓨터과에 진학했던지라 알아서들 또 다른 팀에 들어가곤 했는데 전 그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법대에서는 게임을 만드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더군요. -_-;;;; 혹시나 하는 맘에 연세대 컴퓨터 동아리에서 맘 맞는 새 멤버들을 찾아볼까 해서 찾아가보기도 했는데.... 그 후진 386 컴퓨터 한대 앞에 학생들 10여명이 우르르 모여서 '오오 신기하다~'라고 감탄하고 있는 꼴을 보곤 그냥 돌아서 나왔습니다. -_-;;;; 그렇게 대학교 초창기를 그냥 아무 의미없이 방황하며 살았죠. 그냥 힘들었던 기억만 많이 나고요. 그래서인지 단편 따위의 글도 많이 쓰고 노래도 꽤 만들고/부르고 그랬었네요.

그래서 그냥 다 잊고 군대나 갈려고 했는데 부모님들이 아들이 두명 다 군대에 가있는 건 쓸쓸하다시면서 형 제대하면 군대 가라고 만류하셔서 그것도 뜻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대신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죠.

고시생 - 가족의 캐나다 이민 결정
사법고시 공부... 결국엔 이 것밖에 할 게 없나보다 하고 시작했었죠. 대학교 2학년, 97년이었을거에요. 그리고 법대 동기들이 거의 전부다 하니까 나도 해야하나 보다 따라한 것도 있고요. 나름대로 열심히 한 기간도 있었는데 결국 제가 정말 정열을 가지고 한 일이 아니다보니 계속 실패하더군요. 지금 뒤돌아보면... 나중에 제가 게임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퍼부은 노력에 비하면 정말 허접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나 하는 말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라'입니다.) 또한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다보니 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만투성이었고, 성격도 꽤나 드러웠죠... (그 때 제 더러운 성격에 학 때신 분들 ... 혹시 보시고 계시면 미안해요...)

전 이 때만 해도 그냥 전 고시패스하고, 군복무관으로 몇 년 근무하고 나와서 판/검/변호사가 될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97년 초인가에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가겠다고 결정하고 이민서류를 넣었을 때만 해도 좀 놀랐었죠. 부모님들이 혹시나 해서 제 이름까지 포함해서 전가족 이민서류를 넣어 놓긴했지만(아들 2명 넣나 1명 넣나 가격 차이가 별로 없었다는군요), 이 때만 해도 부모님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전 한국에서 고시패스해서 그냥 한국에서 눌러 살거라고 생각했죠. 따라서 이민 허가가 나면 가족들은 캐나다 가서 영주권 취득하고, 전 한국에 남아서 그냥 영주권을 자동포기할 생각이었습니다. 명문대에 다니고 있던 저에게는 확실히 새로운 나라보단 한국에서 사는거 좀 더 편했으니까요. 사실 뒤돌아보면 한국에서 남았으면 확실히 돈을 더 많이 벌었거나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뭐 정서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불안하고 훨씬 덜 행복했을테지만요.

캐나다 이민... 이거 사실 1년안에 끝났어야 정상이었습니다. 98년이면 가족들이 절 버리고(?) 캐나다로 갈 예정이었지요. 근데 IMF가 터집니다..... 캐나다에서 이민수속 처리도 잘 안해줬죠.

캐나다 영주권 취득, 대학졸업 그리고 영구이민
결국 이민허가는 99년에 났고 가족들은 2000년 4월에 캐나다 이민을 갑니다. 전 이미 정신이 피폐할때로 피폐해 진 고시생이었고, 2001년 2월 졸업 예정이었죠. 제가 2000년 11월말까지 캐나다 입국안하면 영주권이 자동포기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가족도 한번 볼 겸 영주권도 그냥 받아둘 겸(어차피 포기하는 건 쉬우니까요.) 2000년 11월초에 캐나다로 와서 영주권을 땄습니다. 그리고 1주일만에 다시 한국에 나왔죠. 학교 졸업도 해야했고 사법고시도 봐야했으니까요. 당연히 그 해 사법고시 실패했고요. 2001년도엔 그냥 가족들과 있으면서 공부할 생각으로 캐나다에서 반 년 넘게 있었습니다. 

근데 이때부터 캐나다 문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돈과 학벌과 사회적 지위로 한 인간의 모든 걸 판단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점차 맘에 들었던 것 같고요. 그러면서 제가 정말 좋아했지만 한 번의 실패에 상처받아서 그냥 포기해버렸던 게임제작에 대한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 점점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법고시 한 번만 더 시도하고 안되면 다 때려치고 캐나다 들어와서 새출발 해보겠다고... 전 이 당시만해도 아버지가 절 집에서 내쫓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에 접시닦이를 하던 뭘하던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고 살아가면서 결국엔 게임개발자가 될 거라고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2002년, 하늘의 뜻대로 사법고시 실패... 그리고 전 캐나다로 영구이민합니다. 2002년 3월이었습니다.

영어 공포증, 하지만 번역가 인생
부모님께 더이상 사법고시 공부안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전 집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러진 않으시더군요. 그래도 더 이상 부모님께 손벌리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돈 벌 궁리를 했습니다. 접시닦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번역 일을 해볼 순 있겠더군요.

솔직히 저 영어라면 담쌓고 살았었습니다. 대학교 신입생때도 영어로 발표준비해오라는 영어강사님에게 싫다고 대들었다가 쫓겨날 정도였고요. 심지어는 캐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기초 영어학교에 들어가는 것조차 실력부족으로 거절당할 정도였었죠. (사실, 처음에 지원하러 갔을 때 제 실력 테스트 하려고 면접관이 질문을 하는데 질문이 '내일 뭐할꺼냐? What will you do tomorrow?'였죠. 듣긴 들었는데 쫄아서 한 마디도 안나오더군요. 그래서 거부당했습니다 -_-;  저 이 정도로 영어 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인간입니다...(한숨...) 그런데도 이런 제가 번역을 할 생각은 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영어는 개뿔이지만 한글 글쓰기엔 자신이 있었습니다.(단편소설따위 썼으니까요.)
  • 영어 개뿔문제는 그냥 영한사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시간이 걸려도 사전 뒤질 각오되어있었습니다. 이내력과의 싸움.)
  • 캐나다 이민자라면 출판사에서 별 생각없이 확인조차 번역일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번역을 하겠다고 할 때, 저희 형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비웃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짓 하지 말라고... 전 그래도 가능할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원래 입장바꿔 놓고 생각하는 거 잘합니다. 제가 출판사 사장이라도 '나 캐나다 이민자요'라고 하는 오는 인간 넙죽 받아줄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무조건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번역일을 받았고 그때부터 주로 컴퓨터 서적 및 게임개발 서적들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번역한 책보고 게임개발 공부하신 분들 은근히 꽤 계실 겁니다. Programming RPG Games with DirectX... 많이들 보셨죠? 그 외에도 게임아카데미하고도 일했고, 코리아 헤럴드 통번역 센터를 통해서 정말 많은 번역일을 했습니다. 가마수트라 기사들도 번역 좀 했죠. 그 와중에 갈렉산드리아도 열었고요.

사실 번역일을 하려고 했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게임개발 서적을 번역하면서 96년이후부터 손놓아버려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버린 제 게임프로그래밍 실력을 다시 늘려볼 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 나는대로 저 스스로 게임프로그래밍 공부를 한 뒤에 캐나다 게임회사에 지원할 생각이었죠. 그래서 저희 형이 BCIT라는 컴퓨터 쪽으로는 나름대로 평가가 좋은 대학을 가라고 했을때도 '학교에서 배우는 건 하나도 없어. 나 혼자 할꺼야'라고 한마디로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정작 제가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대신에 번역일로 돈 버는 것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저에게 보다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 저에게 덜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단편소설 및 시를 쓰는 것도 이 때 어느정도 포기했고(그 때 썼던 글들을 다른 웹사이트에 올리고 있습니다), 음악도 이 때 포기했죠. 그리고 번역, 게임 프로그래밍 공부, 그리고 영어(이미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에만 집중하려고 했죠. 근데 이것 저것 포기했는데도 정작 게임프로그래밍 공부는 뒷전이더군요. 그래서 결국 BCIT를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BCIT에서 뭔가 배울 게 있어서 가기로 한게 아니라 1) 학교를 다니면 스케줄 따라 무언가를 해야하니까 어찌되었든 프로그래밍 공부를 할거고, 2) 당장 제 실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해서 '나 이만큼 실력있소.'라는 걸 보여주면 취업이 조금은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다행히 2년치 학비는 번역으로 어느정도 벌어놨었습니다.

BCIT 생활
BCIT의 CST란 프로그램에 입학했습니다. 2003년 9월이었습니다. 2년짜리 과정인데 여길 들어간 이유는 일단 여기가 제대로 빡세게 가르치기로 악명(?)이 높았고, 4년짜리 대학에 들어가기엔 더이상 낭비할 인생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여기 들어갈 때 목표는 수석졸업이었습니다. 어차피 남들보다 영어도 못하고 캐나다 출신도 아니니 내가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단 걸 보여주는 게 유일하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저 자신에 대한 의문이 생기더군요. 그 이유는:
  • 과연 내가 그 수년간의 공백기간 이후에도 컴퓨터를 잘할 수 있을까?
  • 과연 내가 영어 강의를 이해할 수 있을까?
  • 과연 내가 수석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될까?
였습니다.

영어강의...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BCIT 들어오기전에 영어과정에서 영어쓰기와 읽기는 엄청나게 공부해서 A-로 졸업하긴 했지만(역시 빡세게 했습니다 -_-) 역시 듣기/말하기는 참 힘들었습니다. 심지어는 학교친구들하고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었으니까요. 한 몇주간 영어때문에 스트레스 한참 받다가 거의 포기했습니다. 영어 잘하는걸...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제 프로그래밍 실력이 보통사람 이상이었단 겁니다. 그리고 성격적으로 캐나다인들하고 잘 맞다보니, 캐나다 친구들이 절 잘 받아주었고, 결국 캐나다인 3명과 같이 팀을 이뤄 학교 프로젝트 및 과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이 되면 그만큼 돌아오는게 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과 거의 밤과 낮을 동고동락할 정도로 학교과제가 빡세었던지라 그렇게 어울리면서 저절로 영어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영어는 포기하면 잘하게 된다.'란 말 들은 적 있었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정말 주말도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교 다닐동안에 어디 놀러가거 쉰 기억 거의 없습니다. (한 학기 끝날 때마다 학교 Pub에 가서 술마시고 노는 정도) 그 결과 제가 전공했던 Digital Processing에서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2005년 5월이었습니다.

사기꾼 게임회사 취업, 잠시 방황, 그리고 Dream Came True. Really.
졸업후에 한 3개월간 취업 못하다가 Relic도 떨어지고 KoolHaus라는 악덕회사에 취업을 합니다. 게임개발자가 되려고 하는 졸업생들을 착취해 먹는 회사였죠. 보다보다 못해 5개월만에 때려치고, 다른 게임회사에 당장 취직도 안되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머로 한 3~4개월 일했습니다. 이 때 다닌 회사 꽤 안정적이고 복지도 좋아서 어머님이 좋아하시긴 했는데, 업무가 너무 지루하고 게임을 너무 만들고 싶었기에 어머니 몰래 게임회사에 원서넣고 면접보고 취업을 했습니다. 이 때부터가 제 꿈을 다시 이룬 때죠. 2006년 6월일 겁니다.

이 회사 이름이 Blue Castle Games입니다. EA에서 야구게임 만들던 사람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고 전 여기서 Xbox 360, PS3, Wii, PS2, PSP용으로 야구게임 3개(플랫폼 별로 따지면 10개)를 출시했습니다. 사실 이 회사 다니면서 전 다른 일돌다 많이 했습니다. 거의 5가지 일을 동시에 했던듯 한데요(five jobs족?). 1) BCG에서 그래픽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2) AI 대학에서 HLSL 강사를 했고, 3) BCIT에서 Computer Graphics 전공으로 학사과정을 마무리지었고, 4) BCIT에서 CST학생들 채점을 했고 5) 번역도 했습니다. 거의 미친 짓이었죠. -_-;;;

이렇게 여러가지 일을 몰아서 한 이유는 제가 과거에 방황하느라 낭비한 삶을 좀 만회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바쁘게 살았죠. -_-;;; 남들 full-time으로 2년동안 마치는(CST 2년에 2년 추가해서 학사 받습니다) 학사과정을 전 part-time으로 2년에 마쳤으니까요. 이 때 스케줄이 어땠냐하면요....
  • 월요일: 회사 업무. 회사업무 후 BCIT 수업들음
  • 화요일: 회사 업무. 회사업무 후 AI에 가서 강의
  • 수요일: 회사 업무. 회사업무 후 BCIT 과제 
  • 목요일: 회사 업무. 회사업무 후 BCIT 수업들음
  • 목요일: 회사 업무. 회사업무 후 BCIT 과제
  • 금요일: 회사 업무. 회사업무 후 BCIT 과제
  • 토요일: BCIT 수업들음. BCIT 채점. 번역
  • 일요일: BCIT 채점. AI 수업준비. 번역
정말 미쳤었죠 -_-;

그리고 AI에서도 학생들이 언제나 최고강사로 칭해줬고, 아직까지도 학생들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저에게 정말 고맙다고 술사주고 그럴 정도입니다. 뭐든 열심히 했죠. 고시생 시절하고 비교하면 정말... 그때가 부끄러울 정도죠. 

(이제 제가 왜 싱글인지 아시겠죠? ^^)

그리고 현재
그리고 2008년 5월에 전 Relic으로 옮겼고.. 아직까지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2월을 끝으로 좀더 게임 프로그래밍에 전념할려고 AI의 강사직을 사임하고, BCIT에서 채점하는 것도 관뒀습니다. 번역도 관둔지 꽤 되었죠.

그럼 다시한번 제 현재상태가 어떤지 볼까요?
  • 현재 Relic Entertainment의 스페이스마린 팀에서 렌더링 프로그래머로 재직중입니다.
  • 북미 경력 6년, 한국경력 포함 대략 10년입니다.
  • 내년쯤에 Senior Graphics Programmer 타이틀을 달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한달에 한 번씩은 세계 유수의 게임개발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습니다. (오늘도 Ubisoft에서 전화왔었습니다.)
(그냥 복사해서 붙였습니다 -_-)

지난 15년간을 돌아보면... 
  • 한 5~6년 쓸데없이 방황했습니다. 괜히 남 탓, 세상탓을 했었습니다. 사실 제가 실패가 두려워서 그랬을 뿐인데요. 그래도 그 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그 뒤로 다시는 그렇게 인생 낭비하지 않으려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습니다.
  • 게임프로그래머가 다시 되려고 마음먹고 노력할 때는 정말 제가 즐겼지만 제 꿈보다는 덜 중요했던 것들(음악, 글쓰기 등) 다 포기하고 이짓만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즐기면서 자신을 꿈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건 자기합리화일 뿐입니다.
  • 제가 할 수 있는 것 다 이루고도(수석졸업) 게임 프로그래머로 취직하는 거 쉽지 않았습니다.
  • 주변에서 '넌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 꽤 많았습니다. 그래도 '난 돼'라는 거 보여주기 위해 더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기위해 노력했습니다.
  • 운이란 건 확실히 없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되어있기 위해서 빡세게 노력하는 것만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그리고 지금은 확실히 행복합니다.



p.s. 매우 주관적/감정적인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_-;;;
p.s.2. 글 즐겁게 보셨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싶으시면 View On(Daum)이나 좀 눌러주세요. ^^


댓글 42개:

  1. 이번 글도 잘 보았습니다. 역시 많은 자극이 되고 많은 공부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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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국 석사 유학 준비중인 현직 게임 개발자입니다. 항상 불투명한 꿈에 힘들었었는데 포프님의 포스팅을 보면서 큰 힘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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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uecube님 공부가 좋으셔서 석사 가시는 거죠? 그러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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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 힘든 과정을 유쾌함을 잃지 않고 해냈다는 점을 포프님의 가장 대단한 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거의 전 과정을 지켜본 것 같은데.. 참 우리는 뜨거운 사람들이야 :) 앞으로도 뜨겁게 당당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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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쵸 리키씨는 그래도 언제나 길 잃지 않고 열심히 자기길 달려온 사람이고.. 여러번이나 역경이와도 다시 일어난 분이시고... 전 무서워서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 리키씨도 계속 멋지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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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본문의 글도 매우 흥미롭게 봤지만 한마디가 제 가슴에 꽃히네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즐기면서 자신을 꿈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껏 저는 하고싶은거 다 하면서 난 왜 안되지 라고 생각하는 부류였던거 같습니다. 이제 뭐가 중요한지 결정하고 나머진 과감히 버려야 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자극제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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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다행이에요. 제가 생각하는것 중에 하나라도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다는건... 이런 조언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이런 말 했다가 "넌 너무 극단적이야. 웃기지 마" 라는 식의 반응을 들은 경우도 꽤 있거든요. (뭐 그런친구들은 여전히 고 모양 고대로고 항산 만날때마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서만 하소연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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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그리고 질문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북미쪽은 신입 프로그래머 경우 대충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제가 올해 30인데 너무 늦은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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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런 거 상관 없습니다. 취직할때 나이 물어보면 그 자체로 이미 노동법 위반이거든요. 나이에 따라 위계질서를 나누는 사회가 아닌지라 그런거 아무 신경도 안쓰죠. ^^ 30살이면 이정도 실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없고요.

    저도 여기서 취직할땐 거의 신입취급 받았는데(한국경력이 너무 오래전이라) 저도 거의 한국나이 28~9살이었을걸요.

    (50살에 신입 프로그래머 취직한 사람도 현재 저희팀에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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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잘 읽었습니다. 잘 정리해놓으셨네요. 솔직한 회고도 좋았고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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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호오~역시 멋짐. 생일 축하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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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아까 잠안자고 블로그 끝낼꺼같다고 쓴 유저입니다.
    너무 잘읽었습니다. 정말 글을 쓰시는걸 보시면 정말 너무 좋으신분같습니다. 아는 예쁜 누님들 좀 소개시켜드리고싶네요.
    만약에 엘에이 오신다면, 꼭 좋은분들을 소개시켜드릴께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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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그래프 2012발표자로 선정되서 8월달에 LA에 갑니다만... 예쁜 누님들 아직도 남아계신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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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글 잘읽었습니다. 글을 보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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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운이란 건 확실히 없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되어있기 위해서 빡세게 노력하는 것만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대목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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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익명: 그렇게 사시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세상탓만 하기 보다는..(한 때 세상탓만 하고 산 때가 가장 후회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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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OpenGL 자료 찾아보다가 여기까지 들어오게 됐네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했던 노력이 결코 범상치는 않아 보입니다 ^^. 좋은 글 올려주셔서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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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럼요.. 제가 좀 범상치 않지요...... 는 농담이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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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혹시 D&D 3rd 관련해서 번역 좀 하셨던 Pope 님 맞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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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감사합니다. 포프님덕분에 대한민국에 프로그래머가 새로 한명 태어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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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 그럼 책을 사세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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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포프님의 소중한 인생경험 잘 읽었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사셨네요. ㅎ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운이란 건 확실히 없었습니다."라는 부분이요.
    포프님이 대단히 착각하고 계시는거 같네요.

    포프님은 이미 운은 가지고 태어나셨어요.
    머리 좋게 태어나신 것도 운이고,
    캐나다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환경을 (어쩔 수 없으셨겠지만) 만들어 주신 부모님이 계셔서
    포프님이 외국에서 나름 수월(?)하게 게임프로그래머라는 꿈을 좇을 수 있었던 것이고요.

    운은... 씁쓸하지만 있습니다.
    하지만 포프님의 과거에 하셨던 노력은 대단하시네요. ^^

    다시 한 번 좋은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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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전 그걸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회라고 생각하죠. 기회가 왔을때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죠.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건 부모님 덕이지만... 그거와 여기 취업을 하게된건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는거 같아요.... 이민자들/2세들 대부분 자기 자리 못잡으니까요... 다만 저에게 잘맞는 캐나다란 나라를 겪을 기회가 되었다는 면에서 보면 그건 좋은 기회였다 생각하구요.

      머리 좋게 태어난 건 음... 사실이 아니라..... 운이든 기회던 성립은 안될거 같네요... 아이큐 검사를 했을때도 그랬고 실제 다른 사람과 두뇌를 쓰며 겨룰일이 있을때도 그랬고.. 전 평균정도의 지능을 가진게 전부입니다. 저는 그보단 계획 세우고 하나에 올인하는걸 더 잘하는거 같아요. 남보다 잘하려면 삶에서 왠만한 다른거 다 포기하고 하고 싶은거 몇개에 올인해야만 가능했었으니까요. 그런 성격 때문에 주변에서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거 있자나요.. 무슨 증후군 이런것들...

      전 여전히 운은 없다고 믿습입니다. 다만 기회는 온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든 어떤 형태로도 오구요. 그 기회가 왔을때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준비가 된 자들이 성공한다고 믿고 있고요. (뭐 아닌 케이스도 있지만... 그 수가 너무 적어서 그거 하나 보고 살기엔 제 성격이 허락을 안하느거죠.. 어느날 로또에 당첨된다던가 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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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주권을 가지고 시작하신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부모님과 함께 이민하신분들은
      많이들 간과하시더군요..
      학생으로 와서 졸업하고 워크퍼밋 받아가면서 취업해서 영주권그리고 시민권까지 받은
      경험자로서 부모님과 살면서 취업과 공부 뭐든 가능한 스테이더스를 가진 1.5세들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살고있는지 모르는것같아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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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5세대들은 간과하는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내린 결정이 아니기에 별 신경을 안쓰는거 같아요. 사실 1.5세대들(어릴때 부모님 따라 넘어와서 캐나다에서 성장한 분들)은 본인의 의사보다는 부모님들이 결정을 내려준 경우니까요..

      그런건 저도 아쉽지만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에요. 첨부터 '난 이 나라에서 살아야지. 여기서 뿌리 박아야지'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넘어오지 않으면.. 언제나 잔디가 다른쪽이 더 푸르러 보인다고... '한국에 있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릴때 이민온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더 많은거 같구요. 차라리 나이차서 자기가 맘 먹고 넘어온 사람들은 더 잘 정착하는거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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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포프님 말씀도 맞는데, 운이라는게 존재를 하긴 해요...노력으로도 빗나갈 때가 있습니다.
      모든것이 다 노력으로는 되지 않아요. 노력이 통했다면 그건 정말 실력+운 인것 같습니다.
      다만, 노력을 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무언가를 얻거나,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저도 해외취업 경험이 있습니다. 뭐 변변치 않은 디자이너였지만, 그때는 실력이 없이 운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았고, 돌아와서 취업을 하는 과정에선, 실력은 되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여러가지 일을 겪고 결국 다른 길을 가고 있네요.
      사람 일이라는 건 여러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본인의 실력과 능력이 제일 중요하지만, 운같은 그런 변수가 없다고는 장담할 수가 없더라고요. 비명횡사나 예기치 못한 사고도 일종의 '운'입니다.
      포프팀이 운도 좋아 해외취업 잘 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위의 익명분과는 다른 익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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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바로 전에 익명으로 달았는데, 한쪽은 숨기고, 오픈되어 있는 분에게 이야기한다는게 좀 거시기해서,url달고 다시 댓글답니다. 나중에 여쭤볼게 있을것도 있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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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는 그걸 운이라 하지 않고 기회라고 하죠. 성공하는 건 기회가 올때 그걸 잡을수 있는 실력입니다. chance와 luck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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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포프님은 준비가 되어 있었죠. 일단 저는 저렇게 살 자신은 없네요.
      대단한 열정 입니다.
      이 분에게 운이란 말보단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 기회란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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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포프님 글 보면서 그냥 뜬금없이 궁금한점은 대학학사 과정 하시면서 직장생활하고 여러가지 생활 병행하셨다고 했는데 캐나다의 대학에도 우리나라의 야간대학같은 개념이 있는건가요? 아니면 직장하고 병행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존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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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로 프로그램이 존재하는건 아니구요.. 그냥 fulltime으로 낮에 들어야 하는 학과를 온라인과 저녁에만 들어서도 졸업가능하게 해주는 학교들이 있어요. 특히 bcit란 학교가 그걸로 유명한데.. 꽤 인정받는 학교죠. (실무에서.. 학문에서 말고)

      저도 2년은 거길 fulltime으로 다니고 나머지 2년은 저녁/주말/온라인으로 마쳐서 학사를 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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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안녕하세요, 포프님. 글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 포프님의 열정이 느껴져 읽는 내내 감탄을 했습니다.
    저도 그러한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사실 저는 캐나다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수학을 공부하며 연구자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IT계열 쪽으로도 많이 빠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즉슨, 회사에서 수학 잘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솔직히 저로서는 저 말이 조금 과장같기도 하고 (수학과는 취업 잘 되는 과! 라는 과대광고? ㅋㅋ)
    컴퓨터는 컴퓨터, 수학은 수학이라는 생각이 짙어서
    저 말을 듣고 "글쎄~"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야 평생 연구자로서 수학을 연구할 작정이기 때문에
    저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큰 문제는 없지만,
    워낙에 저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와서 솔직히 이젠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직접 그 분야에 몸 담고 일하시는 포프님께 직접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수학을 잘 하는 것, 혹은 수학적 지식이 많은 것이,
    "그렇게" IT쪽에 취업할 때 플러스 요인이 되는지요?
    물론 수학과 컴퓨터가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게 그렇게 플러스 요인이 될 정도로 크게 작용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포프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궁금증에 불과하기 때문에
    포프님의 개인적인 생각, 솔직한 의견도 괜찮습니다.
    솔직히 전 수학과지만 수학과의 전망을 좋게 보지는 않거든요 ㅎ;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거지만... (프로그래밍은 취미로 하고 있고요 ㅎ)
    포프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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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나다 최고의 컴공대학인 워털루에서는 사실 얼마전까지도 컴퓨터 전공하는 애들의 학위가 수학학과 학위였어요.... 사실 수학이 중요한게 아니라 논리력이 중요한거죠.. 근데 학교에서 말그대로 종이에 수학만 푸는것에만 중시하고 전혀 프로그래밍 교육을 안하면 수학만 잘한다고 프로그래머가 된다곤 볼수 없죠.

      이에 대한 생각은 포프TV 1편으로 이미 대충 정리해서 말했으므로 패스.. -_- 제목은 "프로그래머가 수학을 못하면" 이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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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워털루 대학이 그랬었다는 건 몰랐네요.
      포프님의 "논리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수학과 애들이 컴터 수업 몇 개 듣고 프로그래머로 취직한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인가 보군요.
      저도 수치 해석 공부하면서 컴퓨터 공부 좀 해두려고 자바 수업 들었을 때,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이 수학 증명법과 많이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만큼 도움은 됐지만서도.
      아무튼 의견 감사하고, 조금이나마 궁금증이 풀린 것 같습니다.
      다음부턴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 들어도 수긍은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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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포프님의 경력 과 인생에 관한글 정말 잘봣습니다.
    저도 현재 한국에서 IT쪽으로 일하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게임하느것만 좋아했지 솔직히 뭘 만들어야 할지 만들면서도 이거 정말 만들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까 라는 생각만 하면서 만들다가 다시 현실에 안주한 삶을 계속살고있다가
    우연치 않게 캐나다 이민쪽을 알게되서 영어준비하다 캐나다 게임취업에 관심이있어서
    여쭈어 보았는데 역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열정 그리고 약간의 광기? 까지 있어야
    포프님 처럼 되는거 같네요 저는 이리저리 먹고사는 핑계 대면서 자기 안주해 잇었는데
    뭔가 자극이 되는 좋은글이 었던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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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처음 게임 개발하실때 텍스트 머드 게임 개발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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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CIT CST라는 과정이 어떤분은 Computer science?라고 하시는 분이 있는데 홈페이지에는 Computer system technology더라구요. 같은 것인데 이름이 바뀐 것인가요? 그리고 CST과정을 마치고 난뒤 학사로 연계되는 과정이 네트워크와 게임개발 밖에 없는 것 같네요? CG쪽은 사라진 것인가요? 그리고 썡뚱맞은 질문 일수도 있는데 제가 손그림은 잘 못그리는 편 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쪽도 미적 능력이 영향을 많이 끼치는 편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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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비자가 좀 걱정되긴 하네요.. 언어 실력은 다 만들수 있을것 같은데 고졸이 북미 비자받는건 주위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다들 불가능이래서 그부분이 조금 걸립니다. 학사따고 시도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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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솔직하게 정보를 오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래픽을 전공하는 30대 늦깍이 학생이고, 자바를 겉핥기로 했습니다. 여러모로 도움이되는 정보들이 많습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나, 자세나. 포프 티비도 오늘 알았는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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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굳이 상관없는 질문이지만 실례가 안되다면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한국에서 군대는 안가시고 97년~2002년. 초까지 쭉 사법고시를 준비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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